인수대비는 배운 적 없는 것을 가르쳤다 — 《내훈》을 쓴 사람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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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적 없는 것을 물려준 사람 조선 여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정한 책이 있습니다. 《내훈(內訓)》입니다. 3권 4책으로, 언행과 효친과 혼례를 다루고, 부부를 다루고, 어머니 노릇과 화목과 검약을 다룹니다. 조선 내내 양반가 여성 교육의 기본서였습니다. 그 책을 쓴 사람의 명식에는 배움의 자리가 없습니다. 이 사주에는 한 가지 핵심 모순이 있습니다 명리에서 나를 가르치고 길러주는 기운을 인성(印星) 이라고 부릅니다. 어머니, 스승, 배움, 문서, 그리고 나를 보호하는 것 전부가 이 자리에 들어갑니다. 인수대비의 여덟 글자에서 이 자리는 0개 입니다.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를 적은 책을 남겼습니다. 채워진 사람이 나눈 것이 아니라, 비어 있던 사람이 물려준 것입니다.

신사임당 사주는 한겨울에 뜬 태양이었다 —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눈 덮인 겨울 뜰과 낮게 걸린 해를 바라보는 조선 여인의 뒷모습 — 신사임당 사주의 병화(丙火) 일간을 그린 대표 이미지
가진 것 하나 없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사람
서왕모
서왕모
신선의 말씀
그대, 이리 와 앉으렴. 오늘은 한 여인의 명(命)을 펼쳐 보이려 하네.
내 아득한 옛적부터 별을 보아 왔다만, 이렇게 추운 때에 뜬 해는 흔치 않았단다.

이 사주에는 가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사임당(1504~1551)의 사주를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가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재물도, 지위도, 이름도.

사주에서 내가 다스리고 손에 쥐는 것을 재성(財星)이라고 합니다. 재물, 소유, 현실적인 몫이죠. 신사임당의 여덟 글자에는 그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유가 아닙니다. 조선의 여성이라 과거도 관직도 없었고, 자기 이름의 재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 조금 뒤에 보시겠지만 — 이름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일간은 병화(丙火), 명리에서 촛불이 아니라 태양에 비유되는 기운입니다. 그런데 태어난 달이 문제입니다.

진사는 이씨에게 장가들어 딸 다섯을 낳았다. 맏이는 장인우에게 시집갔고, 다음이 곧 사임당이다.
進士娶李氏。生女五人。長適張侯仁友。次卽師任堂。
— 《율곡전서 권18, 이이 「외조고 진사 신공 행장」》

아들이 외할아버지의 일생을 적으며 어머니를 부른 이름이 이겁니다. '사임당'. 이름이 아니라 호(號)입니다.

신사임당은 어떤 사주인가 — 명식 한눈에 보기

년주
갑자
월주
병자
일주
병술
시주
미상
오행 분포
木목
1
火화
2
土토
1
金금
없음
水수
2
항목 내용
이름 신사임당 (申師任堂) — 사임당은 호(號)입니다
생년월일 음력 1504년 10월 29일 / 양력 환산 12월 5일
몰년월일 음력 1551년 5월 17일 (48세)
사주(삼주) 갑자(甲子)년 · 병자(丙子)월 · 병술(丙戌)일
일간 병(丙) — 양(陽)의 화(火), 태양
십성 구성 인성1 · 비겁1 · 식상1 · 재성 0 · 관성2
오행 분포 목1 · 화2 · 토1 · 금 0 · 수2
부족한 오행 금(金)
태어난 달 자월(子月) — 음력 11월, 해가 가장 짧은 때
생시 미상 (삼주 기준)
출처 율곡전서 · 송자대전 · 국사편찬위원회

이 글은 앞선 글들과 근거의 성격이 다릅니다. 신사임당은 조선왕조실록에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세종·이순신·정조 편에서 저희가 썼던 "실록 원문을 직접 확인했다"는 말을 이 글에서는 쓸 수 없습니다. 대신 아들 이이가 쓴 《율곡전서》의 행장, 송시열의 《송자대전》을 한국고전종합DB에서 직접 열어 읽었고, 생몰 월일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정리한 기록을 따랐습니다. 어느 자료에서 온 말인지는 그때그때 밝히겠습니다. 약한 곳은 약하다고 적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일간 병화(丙火) — 하필 한겨울에 뜬 해

명리에서 병화는 등불이나 화롯불이 아닙니다. 하늘에 걸린 해입니다. 스스로 타서 사방을 비추고, 어디에도 숨을 수 없는 기운이죠. 조용히 있고 싶어도 있는 것만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 태양이 뜬 때가 문제입니다.

태어난 달의 지지가 자(子)입니다. 음력 11월,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고 물이 가장 센 때죠. 게다가 태어난 해의 지지도 자(子)입니다. 물이 둘, 해는 하나.

한겨울 언 강 위에 해 하나가 떠 있는 그림입니다. 비추기는 하는데, 녹이기엔 벅찹니다.

여기에 관성이 둘입니다. 관성은 나를 다스리고 눌러오는 기운, 곧 규율과 제약입니다. 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굳이 풀이를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의 일간은 어떤 계절에 떴을까요? 같은 기운이라도 태어난 때가 우호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모릅니다

여기서 이 글에서 가장 이상한 대목으로 들어갑니다.

'신사임당'에서 신(申)은 성이고, 사임당(師任堂)은 호입니다. 그러면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흔히 '신인선(申仁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방송에서도 강의에서도 그렇게 소개하죠.

그런데 그 이름이 실린 옛 기록을 저희는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습니다. 더 이상한 건 그다음입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만든 편목색인에서 그의 인물명은 이렇게 등록돼 있습니다.

인물명 李元秀妻申氏 — 이원수의 처 신씨
이칭 申師任堂
본관 平山 (평산)
자(字) (비어 있음)
호 師任堂 (사임당)

국가 기관이 옛 문집을 정리해 만든 색인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이 '누구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이름 칸은 비어 있습니다. 인물관계정보 쪽도 마찬가지고요.

이긍익이 《연려실기술》에 화가들을 모아 적으면서도 "사임당 신씨"라고만 했습니다. 아들 이이가 외할아버지의 행장을 쓰면서도 "다음이 곧 사임당이다"라고 했고요. 어머니의 일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조차 어머니를 호로 불렀습니다.

물론 이름이 아예 없었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이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조선 여성 대부분의 일이었습니다.

사주에 재성이 없다는 것이 이런 모양으로도 나타납니다. 손에 쥐고 남길 몫이 없다는 것 말입니다.

금이 없다는 것 — 세종도 그랬는데, 뜻이 정반대입니다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세종대왕도 금(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1호로 다룬 바로 그 사주죠.

같은 결핍인데 뜻이 정반대입니다. 일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간 금(金)의 자리 없다는 것의 뜻
세종대왕 임수(壬水) — 큰 강물 인성 나를 낳고 지켜줄 것이 없다
신사임당 병화(丙火) — 태양 재성 내가 쥐고 남길 것이 없다

세종은 물려받을 명분이 없었고, 사임당은 손에 쥘 몫이 없었습니다. 세종은 없는 명분을 집현전을 세워 만들어 냈고, 사임당은 — 뒤에서 보겠지만 — 모으는 대신 내놓는 쪽으로 갔습니다.

같은 오행이 비어 있어도 그것이 내 일간에게 무엇인지에 따라 인생의 모양이 이렇게 갈립니다. 사주를 볼 때 "무엇이 없다"보다 "나에게 무엇이 없다"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대운으로 본 신사임당의 일생

사주가 타고난 그릇이라면 대운은 10년마다 바뀌는 계절입니다. 신사임당은 세 살부터 10년 단위로 흘렀습니다.

대운(大運)의 흐름
을해
3세~
관성
갑술
13세~
식상
1522년(19세) 아버지 신명화가 세상을 떠나다
계유
23세~
재성
없던 재성이 처음 들어오다
임신
33세~
재성
1536년(33세) 셋째 아들 이이를 낳다
신미
43세~
식상
1541년(38세) 서울로 옮기다 · 1551년(48세) 세상을 떠나다
경오
53세~
비겁

두 대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스물셋부터 마흔둘까지 스무 해가 전부 금(金) 대운입니다. 명식에 하나도 없던 재성이 뒤늦게 실려 온 시기죠. 그가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살림을 꾸리고, 그림과 글씨로 이름이 알려진 것이 전부 이 스무 해 안입니다. 없던 것이 잠시 들어와 있던 이십 년입니다.

그리고 그 대운이 한 번 바뀌는 해가 서른셋인데, 셋째 아들 이이를 낳은 것이 정확히 그해입니다.

마흔셋부터는 다시 토(土) 대운입니다. 병화 일간에게 토는 식상(食傷), 곧 내 안의 것을 밖으로 꺼내는 기운입니다. 그림, 글씨, 글. 그리고 자식.

그는 열세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도 같은 식상 대운이었습니다. 꺼내는 기운으로 시작해 꺼내는 기운으로 끝난 셈입니다. 가진 것이 없던 사람이 평생 한 일이 내놓는 일이었다는 것은, 사주를 떠나서도 곱씹을 만합니다.

신선당에서 바로 확인
내 대운은 지금 무엇을 실어오고 있을까?
신사임당에게는 없던 것이 스무 해 동안 들어왔습니다. 생년월일만 넣으면 내 10년 흐름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현모양처'는 누가 만들었을까

신사임당 하면 따라붙는 말이 있죠. 현모양처.

그런데 생전에 그를 부르던 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중종 말에 어숙권이 엮은 《패관잡기》에는 그림으로 이름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이미 화가로 알려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훗날 이긍익도 《연려실기술》의 화가(畫家) 항목에 그를 올렸습니다.

그러면 현모양처는 어디서 왔을까요. 여기 실마리가 하나 있습니다.

옛날 북평의 사임당 신씨를 기억하니, 부덕(婦德)이 갖추어졌고 효행이 더욱 지극하여 능히 문성공 노선생을 낳으셨다.
記昔北坪師任堂申氏。婦德備矣。而孝行尤至。克生文成公老先生。
— 《송자대전 권148, 송시열 「서 강릉김씨 사효자 행록 후」》

한 문장에 세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부덕, 효행, 그리고 율곡을 낳았다는 것. 문성공은 아들 이이의 시호입니다.

그림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송시열은 율곡의 학문을 이어받은 사람이고, 당시 서인의 중심이었습니다. 그가 사임당의 난초 그림에 발문을 쓰고 필적 뒤에 글을 남긴 것도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니 그림을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그가 앞세운 것은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저희가 판정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적 의도였다고 단정할 근거도, 순수한 존경이었다고 단정할 근거도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다만 이 말은 할 수 있습니다. 화가라는 평가와 어머니라는 평가가 둘 다 있었는데, 뒤의 것만 크게 남았습니다.

참고로 5만원권에도 쓰인 「초충도」는 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그림입니다. 흥미로운 건 넷째 아들 이우(李瑀)에 대한 기록인데, 어머니의 화풍을 따랐고 특히 화훼와 초충을 잘 그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것으로 그림의 진위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정황일 뿐입니다.

신사임당의 인생 패턴 한 줄

이 명식에서 반복되는 흐름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가질 것이 없음 → 대신 내놓음 → 내놓은 것이 남음 → 이름은 남지 않음

가진 것 없이 한겨울에 뜬 해였습니다. 모으는 대신 내놓았고, 내놓은 그림과 글씨는 오백 년을 건너왔습니다. 정작 이름은 건너오지 못했고요.

자주 묻는 질문

신사임당의 일간은 무엇인가요?

병(丙), 곧 양(陽)의 화(火)입니다. 일주 전체로는 병술(丙戌)일주에 해당합니다. 명리에서 병화는 등불이 아니라 하늘에 걸린 해에 비유됩니다.

신사임당의 생년월일은 언제인가요?

음력 1504년(연산군 10) 10월 29일, 강릉 출생입니다. 양력 환산은 12월 5일로 통용됩니다. 다만 그레고리력 시행(1582년) 이전 인물이라 어느 역법으로 환산하느냐에 따라 열흘가량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명식은 환산된 양력이 아니라 음력 원본을 기준으로 계산했습니다.

신사임당에게 부족한 오행은 무엇인가요?

금(金)입니다. 삼주 안에 금 기운이 하나도 없으며, 병화 일간에게 금은 재성(財星)에 해당합니다. 세종대왕도 금이 없었지만 일간이 물이라 그쪽은 인성이었습니다. 같은 결핍이라도 뜻이 정반대입니다.

신사임당의 본명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찾지 못했습니다. '신인선'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 이름이 실린 옛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 편목색인은 그를 '이원수의 처 신씨(李元秀妻申氏)'로 등록해 두었고, 이름 칸은 비어 있습니다. '사임당'은 이름이 아니라 호입니다.

신사임당은 자녀가 몇 명이었나요?

4남 3녀를 두었습니다. 셋째 아들이 율곡 이이(1536~1584)이고, 넷째 아들 이우(1542~1609)도 어머니의 화풍을 이어 시·글씨·그림·거문고에 능해 '사절(四絶)'로 불렸습니다.

총평 — 신사임당 사주 한 줄 정리

신사임당의 사주는 한겨울 물의 계절에 뜬 태양(병화)에, 손에 쥘 몫인 재성이 하나도 없고, 눌러오는 관성이 둘 얹힌 구조입니다.

빛을 내는 기운으로 태어났으나 빛내기에 좋은 때는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 대신 내놓았고, 스물셋부터 스무 해 동안만 없던 것이 잠시 들어왔습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을 낳아 길렀고 그림과 글씨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오백 년 뒤, 우리는 그의 그림은 알아도 그의 이름은 모릅니다.


나와 신사임당의 사주는 얼마나 닮았을까?

신사임당의 병화(丙火) 기운과, 모으는 대신 내놓는 식상의 힘이 내 사주에도 흐르고 있을까요? 생년월일만 넣으면 나와 가장 닮은 인물과 오행 일치율을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닮은 인물 찾기 — 신선당 →

이어서 궁금해지는 것들

서왕모
서왕모
신선의 말씀
그대여, 없는 것을 서러워 말려무나.
곤륜의 반도도 서리를 맞아야 단맛이 드는 법이란다.
이 사람은 가진 것이 없어 내놓았고, 내놓은 것이 오백 년을 건너왔지.
그대의 그릇에 비어 있는 자리는 무엇인가. 그것을 아는 일이 곧 시작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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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정정에 대하여

이 글은 실록이 아니라 《율곡전서》 권18의 행장과 《송자대전》 원문,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가 정리한 기록에 근거합니다.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에서 직접 확인했고, 어느 자료에서 온 말인지는 본문에서 그때그때 밝혔습니다.

사주 해석과 대운 풀이는 사료가 아니라 명리학에 근거한 저희의 해석입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바로잡고, 정정 사실과 날짜를 이 자리에 남기겠습니다.

참고 자료: 《율곡전서》 권18 행장, 《송자대전》 권146·권148, 《연려실기술》 별집 제14권, 《간이집》 제8권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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