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대비는 배운 적 없는 것을 가르쳤다 — 《내훈》을 쓴 사람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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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바다는 건넜는데 |
1597년, 이순신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2월, 사헌부가 통제사 이순신을 잡아다 죄를 물으라고 했습니다. 죄목은 나라를 속였다는 것, 적을 놓아줬다는 것, 남의 공을 가로챘다는 것이었습니다.
3월, 임금이 직접 붓을 들어 죄를 넷으로 적었습니다.
7월,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대패했습니다. 그 소식이 올라오자 조정이 뒤집혔고, 다들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다시 이순신밖에 없다고.
9월, 그가 돌아왔습니다. 실록은 그가 쓴 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 진도에서 「수습한」 배 열두 척.
남아 있던 게 아닙니다. 흩어진 것을 그러모은 겁니다.
그리고 이겼습니다.
열두 달 안에 다 일어난 일입니다.
신선당은 400년 된 손글씨 책에서 계산법을 읽어 프로그램으로 옮겨 두었습니다. 태어난 날과 나이만 넣으면 그해 글자가 나옵니다. 나올 수 있는 답은 144가지.
이순신의 생일을 넣고 연도를 1597로 맞췄습니다.
손이 멈췄습니다.
그는 이미 한 번 건넌 사람이었습니다. 5년을 싸워 바다를 지켰으니까요. 그런데 2월에 잡혀갔고, 7월에 수군이 무너졌고, 9월에 그러모은 배 열두 척 앞에 섰습니다.
다음 나루를 어떻게 건너나.
내친김에 그의 일생을 훑었습니다.
| 그해 | 그에게 일어난 일 | 뽑힌 여덟 글자 |
|---|---|---|
| 1592 | 왜란이 터졌습니다 | 事多愴忙 晝出魍魎 일이 어수선한데 대낮에 도깨비가 나온다 |
| 1594 | 삼도 수군을 홀로 맡았습니다 | 茫茫大海 遇風孤棹 망망대해에서 바람을 만난 외로운 노 하나 |
| 1597 | 잡혀갔다가 돌아와 이겼습니다 | 一渡滄海 後津何濟 바다는 건넜는데 다음 나루는 어떻게 |
| 1598 | 노량에서 세상을 떴습니다 | 一去玄門 人不識仙 한 번 그 문으로 드니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
마지막 줄에서 등이 서늘했습니다.
그가 죽은 해에 뽑힌 글자가 「한 번 그 문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신선을 알아보지 못한다」입니다.
여기서 끝냈으면 이 글은 훨씬 잘 퍼졌을 겁니다.
한 가지가 걸렸습니다. 너무 잘 맞았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시켰습니다. 1597년과 아무 상관 없는 글자를 아무거나 세 개 뽑으라고요. 그리고 그걸 이순신의 1597년에 그냥 갖다 붙였습니다.
| 아무거나 뽑은 여덟 글자 | 뜻 | 갖다 붙이면 |
|---|---|---|
| 入水不溺 入火不傷 |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
열두 척으로 살아남은 해잖아 |
| 捕兎于海 求魚于山 | 바다에서 토끼를 잡고 산에서 물고기를 찾는다 |
열두 척으로 백 척 넘게 상대한 게 딱 그건데 |
| 暮春三月 花落結實 | 늦봄에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힌다 |
파직됐다가 돌아온 해잖아 |
전부 맞습니다.
하나도 그의 것이 아닙니다.
제비뽑기로 뽑은 종이 세 장이 전부 그의 인생을 설명했습니다.
여덟 글자는 답이 아니라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건넜는데 다음 나루가 막막하다」— 이 그림이 걸릴 자리는 세상에 널렸습니다. 이순신의 1597년에도 걸리고, 회사 옮길까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걸리고, 한 번 붙고 다음이 캄캄한 수험생에게도 걸립니다.
걸리지 않는 인생이 오히려 드뭅니다.
거울더러 잘 맞힌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비출 뿐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거울 앞에서 늘 무언가를 보고 돌아섭니다.
아닐 겁니다.
정월에 이걸 펴 보던 사람들이 정말 미래를 알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저희 생각은 좀 다릅니다.
「올해는 조심하라네」 — 미뤄둔 걱정을 꺼내 볼 핑계가 생깁니다. 「올해는 나가 보라네」 — 못 하던 결심을 할 핑계가 생깁니다.
일 년에 한 번 자기 인생을 통째로 들여다볼 자리. 그걸 만들어 주는 물건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400년을 버텼다고 봅니다. 맞혀서가 아니라 비춰줘서.
이순신이 이걸 봤을 리는 없습니다.
지금 전해지는 형태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토정 이지함이 지었다고 전하지만 근거가 분명하지 않고, 널리 퍼진 것은 한참 뒤입니다. 저희가 지금 계산해 본 것일 뿐, 그가 이 글자를 보고 명량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글은 「옛사람이 미리 알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하나. 여덟 글자를 그대로 보여드립니다. 400년 전 손글씨에 적힌 그대로요. 감추고 풀이만 내밀면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둘. 맞힌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보신 것처럼, 맞는 것처럼 보이는 일은 너무 쉽습니다.
셋. 저희 몫은 여기까지입니다 — 「이 그림이 지금 당신 어디에 걸리나요.」
거기서부터는 거울 앞에 선 분의 일입니다.
1597년과 1598년의 사건은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원문에서 확인했습니다. 2월 4일 탄핵, 2월 6일 압송 명령, 3월 13일 임금의 비망기, 7월 재임명 논의, 9월 명량, 11월 19일 노량이 모두 실록에 있습니다.
명량에서 쓴 배의 수는 사료가 갈립니다. 《선조수정실록》은 열두 척으로 왜선 200여 척을 상대했다 적었고, 《선조실록》은 두 달 뒤 명나라에 보낸 문서에 전선 열세 척과 탐후선 32척으로 왜선 130여 척과 싸웠다고 적었습니다. 본문에서 「열두 척」이라 쓴 것은 앞쪽을 따른 것이며, 어느 쪽이 맞는지 저희는 판정하지 않았습니다.
백의종군과 어머니의 죽음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저희가 실록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해 본문에 쓰지 않았습니다.
뽑은 여덟 글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공개한 『토정비결』 손글씨 책(청구기호 PC9A-10 · PC9A-10D)에서 계산법과 숫자표를 저희가 직접 읽어 프로그램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순신의 생일은 음력 1545년 3월 8일을 썼습니다.
무작위로 뽑은 세 개는 실제로 컴퓨터가 무작위 추출한 것이며, 1597년 것(723번)만 제외했습니다. 재현할 수 있도록 추출 조건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지금 형태의 토정비결이 언제 성립했는지는 저희가 밝히지 못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따라 「확실하지 않다」고만 적었습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확인 후 바로잡고, 정정 사실과 날짜를 이 자리에 남기겠습니다.
참고 자료: 《선조실록》 85권·86권·94권·106권, 《선조수정실록》 31권·32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 · 『토정비결』 청구기호 PC9A-10 · PC9A-10D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jsg.aks.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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